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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영화리뷰

인랑 - 김지운의 비상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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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랑 

  • 제목 : 인랑 (ILLANG: THE WOLF BRIGADE,人狼)
  • 감독 : 김지운
  • 출연 : 강동원 한효주 김무열 외
  • 개봉 : 2018년 7월 25일
  • 러닝타임 : 138분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김지운은 빅3였다. 

대한민국에서 영화를 가장 잘 만드는 사람이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일 때가 있었다.

지금은 도무지 믿기 힘든 사실이지만, 저 셋의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만큼 제각각의 권위와 매력이 존재했다.

 

 

영화매거진 표지에서 박 봉 김의 단체 샷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영화학도들이 모이면 누군가는 김지운이 가장 최고라고 했다.

훌륭한 B급 영화 <조용한 가족>으로 데뷔해, 비릿하면서 따듯한 영화였던 <반칙왕>을 거쳐 <장화, 홍련>이라는

절륜한 공포영화에 당도했을 때 시네필들은 흥분하기 시작한다.

과연 블랙코미디, 드라마, 공포까지 섭렵한 그의 다음 작품은 무엇이 될 것인가? 

그렇게 <달콤한 인생>이 개봉하고 어느 누구의 반론 없이 김지운은 빅3 명예의전당에 무혈입성했다.

 

박 봉 김은 동시에 헐리웃의 문을 두드렸다.

박과 봉은 그럴싸한 수확을 가져왔지만 김지운은 <라스트 스탠드>로 부끄러운 평가를 얻었다. 그때부터 김지운은 조금 달라졌다.

<밀정>은 꽤 훌륭했으나 김지운의 이름을 지워도 상관없는 영화였다. 750만의 흥행성적에도 뒷맛이 씁쓸한 이유였다.

이때 즈음부터 시네필들의 입에서 김지운을 거론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인상>이 개봉했다. 

동명의 전설적인 재패니메이션을 실사화한 영화다. 

감독이라면 대부분 탐냈던 작품이고, 그 난해함에 십수년 넘게 현실화되지 못 한 프로젝트였다.

위태로운 커리어의 감독이 던지는 승부수로서 <인랑>은 더 없이 적절한듯 보였다.

오랜기간 빅3로 군림해온 이유를 200억 전설의 프로젝트로 증명하리라.

2018 7 25 <인랑>이 공개된다.

어설프고 처참한 완성도에 관객과 평단의 십자포화를 맞는다. 

강동원 한효주가 가진 아름다운 비주얼을 이용하여 사상과 사랑에 갈등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우울하게 그려보고자하지만

원작이 가진 운치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

빨간망토이야기는 영화에 녹아들지 못 하고 피상적으로 둥둥 떠있으며, 임중경의 서사는 러브스토리를 설득하지 못 한다.

사상과 체제에서 비롯된 암투와 갈등은 흥미롭지 않은 방식으로 그저 불친절하기만 하다.

토대 없이 치뤄지는 의무적인 액션씬들은 그저 애니의 실사화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 한다.

클라이맥스에 인랑의 정체가 밝혀지는 중요한 장면은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생각이 들만큼 맥빠진다.

게다가 관객이 하지 못함에 섭섭해하는 김지운의 인터뷰는 관객에게 더욱 반감을 일으켰다.

그는 제작비를 탓하고 원작을 탓하고 심지어 관객을 탓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비호했다.

인랑은 90만명도 못 채우고 잔인하게 실패했다. 

더 이상 아무도 김지운을 거장이라 부르지 않게 되었다.

그 후 김지운은 스마트폰 영화를 만들고 애플tv 드라마<닥터브레인>을 찍었다. 

물론 <닥터브레인>의 평가도 끔찍하게 나쁘다.

 

그야말로 김지운의 비상선언이다.

아득히 높게 올라갔던 만큼 떨어진 폭이 아찔하다.

한번 추락한 감독이 보기좋게 다시 정상에 오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김지운은 척박하고 수준낮은 영화의 시대에 빛처럼 나타난 인재였다.

나는 그가 다시 자신을 찾을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김지운은 송강호 주연의 <거미집>으로 돌아온다.

찬란했던 김지운 월드의 무조건적인 재기 즉 비상선언을 선포한 셈이다.